하나님의 전신갑주 성경 구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전신갑주는 전쟁에서 싸우기 위한 필요한 영적 방패와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성경 구절은 에베소서 6:14-18입니다. 하지만 영적전쟁에 대한 전체 구절은 10절부터 20절까지입니다.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6:10-20

  •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 엡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책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정리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해설

허리에 띠를 띠고

고대인들의 옷은 현대의 여성 원피스와 같습니다. 통옷으로 되어 있어서 헐헐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풀거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편안하게 생활할 때는 그냥 풀어두는 것이 편하지만 일을 할 때나 빠르게 움직일 때, 특히 전쟁에 임할 때는 반드시 허리에 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단정하게 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에 띠를 해야한다면(벧전 1:13)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전전쟁에서 해야할 허리띠가 ‘진리의 허리 띠’라고 강조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허리 띠의 역할을 나풀거리는 옷을 단정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데 걸리적 거리지 않게 함으로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적과 싸우는 군인이 옷이 나풀 거린다면 큼 문제가 됩니다. 나뭇가지에 걸려 제풀이 넘어지기도하고, 적에게 옷이 붙잡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의 허리 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리가 하는 일에 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면하고 성실할 것을 포함하여 삶을 단정히 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일에 정신을 팔지 않고 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며 의지하여 마음을 단정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단정히 하는 성도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 띠를 띠지 않고 세상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욕심과 욕망에 덫에 빠진다면 세상의 걱정과 근심으로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호심경은 가슴에 붙이는 방탄복입니다. 고대에는 촘촘한 사슬로 만들었고, 중세 시대에는 기사들이 철판으로 가슴을 감쌌습니다. 화살이나 칼 등으로 공격할 때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가슴에는 심장을 비롯한 중요한 장기들이 있어서 한 번 다치면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입어야 할 호심경은 ‘의의 호심경’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그리스도 말미암아 의로워진 믿음의 의를 말합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자녀 됨에 대한 확신을 말하니다. 의의 문자적 의미는 ‘옳다’ ‘바르다’ ‘흠이 없다’는 뜻이지만, 성도들에게 의는 모든 죄와 허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 용서함을 받아 사라지고 하나님 안에서 흠 없는 자로 새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의의 호심경이 중요할까요? 확신이란 말로 바꾸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탄이 40일의 광야의 금식을 끝내고 시험할 때 모든 조건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스스로 자격이 없도록 조장하여 넘어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신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종종 넘어지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때 사탄이 와서 ‘네 꼬라지를 보라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맞느냐? 넌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넌 아직도 나의 수하이고 죄의 종이다’라고 괴롭히는 것이죠. 사람이 자포자기할 때 자신을 아무렇게나 죄의 삶에 던져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성도를 유혹하는 방법입니다. 이 때 의의 호심경으로 우리의 심장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야, 비록 내가 조그만 실수도하고 되조 짓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사라지지 않다”

“하나님의 용서는 절대 철회되지 않아. 난 하나님의 아들이야”

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로 만들어진 호심경을 가슴에 착용해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 잠언 16장 32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언 25장 28절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좋은 소식이 올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이사야 시대의 좋은 소식은 바벨론에서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죄의 종에서 놓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생명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직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로 인해 만들어진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통치 하시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증거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사야 52장 7절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현대는 누구나 신을 신지만, 물론 아직도 가난한 나라에서 신을 신지 않고 지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은 아무나 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민과 부자들이 신었습니다. 가끔 부유한 귀족 집안의 하인들이 신을 신기는 했지만 일반 사람들은 신을 쉽게 신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을 신어도 짚이나 나무 같은 좋지 않은 신을 신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뜯어지고 헐었습니다. 부자들은 대부분 가죽과 천으로 덧대어진 신을 신었습니다.

신은 부과 권력, 자유를 상징하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살펴보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를 곧장 하인들에게 신을 신기라 말합니다. 다시 아들의 자리를 회복 시켜 주겠다는 아버지의 확고한 뜻입니다.

눅 15:22-24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신은 권리와 자격, 자유를 획득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격은 어디서 올까요? ‘평안의 복음’이라 말합니다. 복음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복음에서 옵니다. 복음을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안은 그리스도로 인해 오는 것이며,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오는 자유와 평안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방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합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로마군인들의 방패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전술용으로 사용하는 자신의 몸의 길이와 비슷한 큰 방패가 있고,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작은 방패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큰 방패로 보입니다. 큰 방패는 적들이 쏘는 화살이나 근접해서 던지는 창을 막는 용도입니다.

방패가 없다면 싸우기도 전에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방패는 대규모 전쟁이나 백병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방패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막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방패’로 설명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은 싸움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두 가지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으면 끝까지 싸우지만 확신이 서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게 됩니다. 블레셋과 싸우던 사울의 군사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지만 요나단은 전쟁은 여호와께 있다면 용감하게 블레셋의 적진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 사무엘상 17장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구원의 투구와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구원 받을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다른 말로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은 미래를 현재화 시키는 것이며,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 이곳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도래하지만 동시에 현재 이곳에 이미 임재해 있습니다.

  •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11장 20절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17장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 그리고 섭리와 성취하심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한 번 구원한 백성으 구원은 최소되지 않습니다. 성도의 견인을 통해 마지막 때까지 지키십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이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무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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