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강해

창세기 9장

창세기 구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1-11장까지는 창조시대로 구분하고, 12-50장까지는 족장시대로 구분합니다. 창조시대를 다시 나누어 보면 1-2장은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3장 이후는 타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6-9장까지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9장은 노아의 홍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10장에서는 노아의 후손들을 다루는 족보가 등장합니다. 10장 족보로 들어가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이방민족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곧 10장은 민족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고대의 기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민족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죄가 들어왔고, 사망과 죽음, 대립과 반목, 악의 동맹과 결탁이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9장은 노아의 홍수 마지막 부분으로서 노아의 홍수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 1-17절 하나님의 언약
  • 18-29절 홍수 이후의 노아

1. 1-17절 하나님의 언약

1) 언약의 특징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1절과 7절에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후 주셨던 복과 동일합니다. 창세기 1:28과 9:1을 비교해 보십시오. 거의 비슷합니다. 

  •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방주에서 내려오는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

성경 신학 가운데 하나가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이 있습니다. 언약을 ‘계약’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언약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파마 로벗슨의 <계약신학과 그리스도>에서 이 부분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팔마 로벗슨은 ‘노아의 언약’을 ‘보존의 언약’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은 특별한 언약이 아니라 아담과 맺었던 언약의 반복입니다. 이것은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홍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무효화’ 시키는 것입니다. 홍수의 저주를 통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타락한 이후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타락했음에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죽임으로 죄를 끊어내십니다. 홍수의 사건도 그와 같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홍수 사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건과 같은 의미입니다. 바벨탑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분명 저주이지만, 저주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지혜와 역설이 아니겠습니까?

2) 언약의 범위

그럼 언약의 범위는 얼마일까요? 10절을 보십시오.

  • 창 9: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생물에게 칩니다. 12절에서도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시간적 범위는 ‘영원한 언약’(16절)입니다. 잠시 잠깐 임시적으로 세운 언약이 아니라 영원히 유효한 언약입니다. 12절에서도 ‘영원히 세우는 언약’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노아와 가족들

3) 언약의 목적

세 번째 은혜의 목적은 ‘은혜’입니다. 노아 언약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은혜는 ‘무지개’에 있습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었다고 표현하십니다. 무지개를 통해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9:21을 보십시오. 노아가 제사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은 향기를 흠향하시고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함이라’(창 9:21)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 곁에 무지개가 등장합니다.

  •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계 10: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런데 창세기에 등장하는 무지개는 의역된 것입니다. 원어는 ‘케쉣트’로 ‘활’을 뜻합니다. 무지개는 활이 땅이 아닌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일리취라는 학자는 노아의 언약 이후, 활은 하나님의 자비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2. 18-29절 홍수 이후의 노아

18-29절에서는 노아의 실수와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은 노아가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가나안 족속의 근원이 함이라는 것입니다. 함에 대해서는 내일 10장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 포도 농사를 시작합니다. 20절을 보면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농사’라는 단어가 나오면 곧바로 ‘가인’ 그리고 ‘가나안’이란 단어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농사가 모두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성향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자, 어쨌든 노아는 그 많은 농사 중에 포도농사를 했습니다.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고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말했습니다. 

함은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그것을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기묘하게도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습니다.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입니다. 존 H. 월튼이란 학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함이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음 모습을 본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경계를 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을 그 벌거벗음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덮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이후 서로의 벌거벗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그것을 덮었습니다. 함은 노아의 벌거벗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을 보지 않고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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