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개요
1장에서 6일 동안의 창조를 다룬 다음 2장에서는 창조 마지막 날이자 7일째 되는 안식일을 다룬다. 하지만 다시 하루 전인 사람의 창조로 돌아가 하와의 창조를 다룬다. 하와의 창조 이전 창조 된 지구의 상태를 설명한 다음 사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아담의 창조를 말하고 에덴 동산의 상태를 언급한다. 이후 다시 하와가 창조된다. 2장은 왜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2장 구조
1-3절 안식일
4-8절 아담의 창조
9-17절 에덴 동산과 계명
18-25절 여자의 창조
창세기 2장 주해 및 강해
1-3절 안식일
안식은 창조의 완성이자 창조의 목적이다. 창조는 궁극적으로 종말을 향한다. 성경은 대단히 상징적으로 기록되었다. 일곱째 날 창조가 완성됨으로 일회의 주기가 완성된다. 현재 일주일 7일 개념은 히브리사상에서 시작되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람들이 거주하고 살 준비가 끝 것인지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즉 이제 시작이다. 마침은 일곱째 날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끝이지만, 신약의 일요일은 시작이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다. 이 말씀은 복음의 완성을 뜻하지 세상의 끝이 아니다. 복음의 완성으로 이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창조의 완성은 창조를 향유할 준비 되었다는 뜻이다.
복되게 하사
사람의 창조 후에도 복을 주신다. 복은 물질과 건강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표하지만 엄밀하게 특별한 존재로, 특별한 목적으로 구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념은 ‘거룩’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결국 복을 준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의도한 중요한 목적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4-8절 아담의 창조
창조의 내력
1장에서 남녀의 창조만 언급하지만 2장은 좀 더 세분화한다. 이것은 남녀의 관계성을 말하려는 의도보다는 목적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4-6절까지는 사람의 창조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한다. 7-8절은 사람의 창조 이후 거할 장소가 에덴 동산이다. 5절의 ‘땅을 갈 사람이 없다’는 말은 곧 사람이 그곳을 ‘경작'(아바드 15절)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 부분은 사람의 창조가 창조의 완성이자 의도인 것을 말한다.
사람의 창조
‘땅의 흙으로'(עָפָר֙ מִן־הָ֣אֲדָמָ֔ה) 사람을 창조하신다. 땅은 아다마이며, 흙으로 번역된 아파르는 ‘먼지’를 뜻한다. 사람은 먼지다. 인간의 기원이 이처럼 초라하다. 또 하나, 사람은 없는 것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있은 것의 변형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물이 끊임없이 바다로 향하듯, 인간은 본질적으로 흙이 되는 속성을 지녔다. 타락 이후 하나님은 ‘흙으로 돌아가라’ 명하신다.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붙드심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명이 유지 되기 위해 인간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은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다. 생기로 번역된 네샤마( נְשָׁמָה)’는 숨쉬는 것을 말하며 구약에서 23번 사용된 흔하지 않는 단어다. 뿌리가 되는 단어 나샴(נָשַׁם)’은 코나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을 말한다. 호흡, 헐떡거림을 말한다. 사람의 생명이 숨을 쉬는 것에 있음을 말한다. 이 단어가 노아의 홍수 당시에 다시 사용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창 7:22)
9-17절 에덴 동산
에덴 동산
하나님은 사랑을 창조하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신다. 에덴 동산은 천국의 상징한다. 중심에 영생하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맺는 두 나무가 있다. 에덴 동산에서 물이 흘러 나오며, 온 대지를 적신다. 에스겔의 성전과 요한계시록의 하늘 보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것과 닮아 있다. 물은 생명이다.
계명
하나님은 아담에게 계명을 주신다.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금지 명령이다. 계명은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과의 질적 차이를 드러내고, 관계성을 드러낸다. 사람은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고 하나님은 그 계명을 인간에게 수여한다. 이 관계를 떠날 수 없다. 타락은 이 관계를 파괴고, 하나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어리석은 시도이다.
18-25절 여자의 창조
돕는 배필
말이 많은 단어지만 중요한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드러내는 단어다. 돕는다(עֵ֖זֶר)는 말은 함께 한다는 말이며 동일한 목적을 가진다. 하와는 남자에게서 왔으며, 남자와 결국 ‘한 몸’을 이룬다.
이름을 짓다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지으리란 계획을 드러낸 후 곧바로 여자의 창조가 아닌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아담의 사역으로 이어진다. 이름 짓은 존재에 대한 규정이다. 이름을 지음으로 그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이름이 없으 면 이해할 수 없다. 이름은 존재를 규정하고 한정 짓는다. 하지만 이름이 없으면 불가한 존재가 된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여기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모든 피조물에 이름을 붙이듯 동물들에게 이름을 짓는다. 창조적 능력을 가진 것이다.
여자라 부르리라
아담은 여자를 보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말한다. 골육이란 단어가 생겨난다. 골육은 ‘하나’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최상급이자 비교급이다. 어떤 존재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다. ‘우리가 남이가’ 흠… 하여튼 그걸 강조하고 있다. 후에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에게 동일한 말을 하여 동질성을 강조한다.
- 삿 9:1-3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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