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개요
창세기 16장의 제목은 ‘하갈의 역습(逆襲)’입니다. 21장에서 사라가 이삭을 낳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님의 약속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받았지만, 언제 어떻게 아이를 낳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당시에 통용되는 방법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라의 행동을 보면 마치 사라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라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이러한 판단은 너무 성급한 것이며, 창세기 관점에서 봐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렇다고 ‘사라가 잘했다’고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라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의도와 심중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자기만의 방식이라는 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창세기 안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떠난 사람들, 즉 애굽의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창세기를 읽고 있는 이들은 출애굽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창세기 15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창세기 15장에서는 소위 ‘햇불 언약’으로 불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게서 조카 롯을 되찾아 온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지금 아브라함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비록 용기를 내서 롯을 구하기 위해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싸워 이기기는 했지만 ‘승리’한 것은 압니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홀로 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 오기를 했지만, 아브라함의 삶은 항상 고독하고 위태로웠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사라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다보니 하나님의 뜻이 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은 당연합니다. 왜 아들을 낳는 것이 중요한가. 아들은 다른 약속의 가장 현실적이고 분명한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낳게 되면 나머지 약속들이 분명하게 성취된다는 것을 확신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15:2에서 하나님께 자식이 없으니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투덜거립니다. 창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분명한 것이 하나 주어졌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입니다. 즉 아브라함에게서 날 자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라는 이것을 아브라함에 들었고, 그것을 속히 실천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바로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16:2의 사래의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사래는 한 가지의 추측과 또 다른 한 가지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한 가지 확신은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과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성인 이유는 하갈을 통해 낳는 아이가 ‘네 몸에서 날 자’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래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합니다.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기 전에 사래와 아브라함은 충분히 의논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사래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 사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래가 전면에 등장하여 일을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16:3에 의하면 사래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준 때는 가나안에 들어온 진 ‘십년 후’입니다. 16:16에 보면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17:1로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다시 나타난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나이차는 14세입니다.
하갈이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하게 된 것을 알게 된 하갈은 사래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멸시하다’는 히브리 원어는 ‘하찮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사래의 몸종이었던 하갈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주인인 사래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아니도 낳지 못하는 주제에 여주인이라고’ 하면서 비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래의 지혜인 하갈은, 이제 사래의 심평을 찢어놓는 가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결국 인간이 낳은 지혜는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래는 아브라함에게 따졌고, 아브라함은 당신 좋을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6절) 결국 사래는 하갈을 학대로 하갈은 사래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게 됩니다.
하갈을 살피시는 하나님
사래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하갈은 도망갑니다. 광야의 샘물 굴길 샘 곁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하갈을 만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8절)
천사의 질문은 하갈로 하여금 ‘네가 누구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느냐?’는 것이죠. 천사는 곧바로 하갈에 사래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9절) 명령망 할 뿐 아니라 약속도 주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이뿐 아니라 1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이스마엘’로 부르라고 말합니다.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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