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1 – 4:17 묵상

부름 받은 자리에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에스더 4장 1절부터 17절까지 같이 묵상해 봅시다. 하만의 조서가 온 제국에 퍼진 후,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들은 깊은 슬픔과 공포에 빠지고, 에스더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딘지를 직면하게 됩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믿음의 결단이 어떻게 구원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속사적 전환점입니다. 특별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고백은 단지 한 인물의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역사의 전선에서 어떻게 쓰임받는지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의 위기를 에스더의 마음으로 받아 내기를 원합니다.

슬픔의 옷을 입은 모르드개 (4:1–3)

하만의 조서를 들은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성읍 가운데로 나아가 통곡합니다(4:1). 여기서 ‘찢다'(קָרַע, 카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고대 히브리 전통에서 극심한 슬픔이나 분노, 그리고 회개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모르드개의 행동은 단지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전 민족을 향한 대표적 중보자로서의 통곡이었습니다.

그는 궁궐 앞까지만 나아갑니다. 이는 법적으로 베옷을 입은 자가 궁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4:2). 성읍 각지에서도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본문에 등장하지 않지만, 금식(צוֹם, 촘)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식은 단지 식사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영적 행위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기도와 회개가 개인의 감정적 반응을 넘어, 공동체적 고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출발점임을 보여줍니다.

외면하는 왕후, 그러나 흔들리는 양심 (4:4–8)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통곡 소식을 듣고 그에게 옷을 보내 입히려 하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4:4). 에스더가 처음 보인 반응은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궁중에 갇힌 안전한 인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하닥을 통해 자신이 입수한 모든 정보를 전하며, 왕에게 나아가 백성을 위하여 간청하라고 전합니다(4:7–8).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단순한 감정적 부탁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행해야 할 사명을 일깨웁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왕의 총애를 입지 못한 지 이미 삼십 일이라”는 에스더의 말입니다(4:11). 이는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 목숨을 건 행위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왕의 부름 없이 나아가는 자는 죽임을 당할 수 있었고, 이는 단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건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때를 위함이 아닌가 (4:9–14)

이제 이 본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노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4:14).

여기서 ‘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עֵת, 에트)는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결정적인 순간’, 곧 하나님의 구원의 카이로스를 의미합니다. 모르드개는 구원의 주체가 에스더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것이며, 에스더는 그 도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4:14)는 말은 선택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그 진리를 에스더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4:15–17)

에스더는 마침내 결단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4:16).

이 고백은 단지 체념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며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취해야 할 순종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원어 표현은 히브리어로 (כַּאֲשֶׁר אָבַדְתִּי אָבָדְתִּי, 카아셰르 아바드티 아바드티)로, 이는 ‘죽기로 작정했으면 죽겠나이다’라는 반복법을 통해 강한 결의와 순교적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제 에스더는 왕후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결단합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하며, 백성과 하나 되어 금식하며 기도하는 이스라엘의 대표로 나섭니다. 이 고백은 구속사적 중심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적 순종과도 연결됩니다. 주님께서도 죽음을 감당하시며 인류 구원을 이루셨듯, 에스더의 고백은 하나님의 구원을 준비하는 결정적인 신앙의 응답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위기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한 여인의 믿음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모르드개의 통곡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때를 깨달은 한 사람의 결단으로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자리에 서 있습니까? 어쩌면 그 자리가 단지 안정과 성공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때를 준비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잠잠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고백은 지금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자의 고백입니다. 오늘도 그 고백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통로로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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