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19 – 3:6 묵상

보이지 않는 전쟁, 드러나는 정체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에스더 2장 19절부터 3장 6절까지입니다. 이 짧은 본문은 겉보기엔 왕궁 내 인사 이동과 간단한 권력 다툼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전조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모든 국면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감춰진 정체성 속에 심어지는 순종의 씨앗 (2:19–20)

본문은 에스더가 왕후가 된 이후, 다시 처녀들이 모일 때 모르드개가 왕문에 앉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2:19). 왕문에 앉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페르시아 궁중에서 행정과 재판이 이루어지던 공적 자리였습니다. 모르드개는 단순히 에스더의 보호자였던 수준을 넘어, 왕국 내에서 중요한 위치로 발돋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아직도 모르드개의 명령을 따르고 있으며, 자신의 유다인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2:20). 여기서 ‘명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מַאֲמַר, 마아마르)로, 이는 권위를 가진 지시이자 신중한 판단에서 나온 지혜로운 충고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지만,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하며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감춤은 두려움의 피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드러내실 그날까지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감춤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때가 이르기 전까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셨던 것과 닮아 있습니다. 구속사의 큰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때로 그분의 백성에게 잠시 침묵과 감춤을 명령하시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드러남을 위한 준비입니다.

작은 충성의 순간이 만든 결정적 전환 (2:21–23)

왕문에 있던 모르드개는 왕을 암살하려는 빅단과 데레스의 음모를 알게 됩니다(2:21). 그는 에스더를 통해 이 사실을 왕에게 전하고, 사건은 조사 끝에 확인되어 두 사람은 처형됩니다(2:22–23). 이 일은 ‘왕 앞에서 기록’되었지만, 이 당시에는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용히 지나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기록하다’(כָּתַב, 카타브)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종종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나중에 심판 또는 구원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모르드개의 행동은 즉각적인 보상을 바라보지 않은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이었고, 그것은 조용히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드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일들이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하늘의 책에 기록하고 계시며, 반드시 그분의 방식으로 갚으십니다.

세상의 승진, 하나님의 시험 (3:1–4)

이제 본문은 하만의 등장을 소개합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3:1). 하만은 아무런 공로 없이 승진합니다. 여기서 ‘지위를 높이 올리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גָּדַל, 가달)이며, 본래 ‘크게 하다’, ‘높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이 높이시는 경우와 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경우가 대비되어 사용되곤 합니다.

모든 신하들이 하만 앞에 절하게 되지만,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습니다(3:2). 여기서 ‘절하다’(כָּרַע, 카라)는 단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닌, 우상 숭배적인 절을 의미하는 문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 신앙의 중심은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진정한 믿음은 정체성의 고백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는 유다인이라 하면서 세상의 방식에 타협하는 자보다, 침묵 속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드러나는 악의 본질과 하나님의 시험대 (3:5–6)

하만은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3:5). 그러나 그는 모르드개 한 사람을 죽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의 민족 전체를 멸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3:6). 이는 단순한 개인적 복수를 넘어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악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구절입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으로 소개되는데, 이는 사울 왕 시대의 아말렉 족속의 후손임을 시사합니다. 아말렉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대표적 민족으로, 하나님은 이들과의 전쟁을 ‘세대에서 세대로 끊임없는 전쟁’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출애굽기 17:16). 하만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 소개가 아니라, 구속사 안에서 하나님 백성과 사탄의 세력 간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왜 악한 자가 높아지는 것을 허락하실까요?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정의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위한 배경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믿음의 시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가 침묵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듯이, 우리도 오늘날 거대한 악의 흐름 앞에서 신앙의 자세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은 겉으로 보기엔 단지 왕궁의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권세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서막입니다. 에스더의 감춰진 정체성, 모르드개의 충성된 순종, 하만의 교만한 승진과 민족 말살 계획—all of these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반드시 맞물려 작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각자의 삶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기억하며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느냐?”

지금은 감춰진 시기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기록될 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반드시 오며, 그때는 드러남의 때요, 구원의 때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믿음으로 서십시오. 감춰졌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간직한 자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정결한 도구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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