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장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장은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함으로 시작합니다. 5장의 전체적인 내용은 4:17부터 이어진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삶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5장에서는 탐욕을 경배하며, 5절에서 탐욕을 우상숭배자로 규정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선언합니다.(5절 하)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8절에서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1-14절에서 바울은 빛과 어둠을 대비시킴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해 행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구조
- 1-14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15-21 지혜와 성령으로 살아가라
- 22-33 아내와 남편의 관계
에베소서 5장 강해
1-14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먼저 우리가 살필 내용은 ‘빛의 자녀’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굳이 별다른 해석을 가하지 않아도 ‘빛의 자녀’는 곧 하나님의 거듭난 성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의 백성이나 성도라는 말을 쓰지 않고 ‘빛의 자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주 안에서 빛이라’라고 선언합니다. 요한일서 1:5에 의하면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요한1서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성경 속에서 빛은 종종 하나님 자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속성들을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바울은 14절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으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구약 이사야 60:1-2을 인용하여 변형시킨 것입니다.
[이사야 60:1-3]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의 말씀은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났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빛의 열매는 하나님의 백성과 성도들이 맺어야할 삶의 열매가 분명합니다. 9절에 의하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반대로 성도는 어둠을 버려야 합니다.(11절) 어둠은 어둠에서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상태, 거듭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어둠은 3절에서 나타난대로 음행(淫行)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말합니다. 5절에서는 이러한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자, 탐하는 자들 곧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선포합니다.
15-21 지혜와 성령으로 살아가라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바울의 대응은 이렇습니다.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고 권고합니다.(15절) 지혜로운 자의 삶은 16절에서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이 말을 의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깝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라는 뜻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종말론적 삶을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도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개인도 개인의 종말을 맞이합니다. 역사적 종말과 개인의 종말 사이의 조망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지혜자의 삶입니다.
18절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이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자, 이곳에 ‘방탕’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어제 읽은 4:19로 갑시다. 그곳에서 바울은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합니다. 방탕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즉 날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기를 다짐하며 절제하고 근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쾌락과 탐욕을 따라 사는 죄된 삶, 즉 어둠의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방탕한 삶입니다. 그 방탕함이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술취함’에서 옵니다. 20세기 위대한 강해 설교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술 취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킴으로 육신적 욕망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육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리 말라는 것입니다. 4:22에서 언급한 대로 술 취하는 삶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는 사는 삶’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5장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는 어떤 능력이나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올바른 지각을 사용하여, 15절,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 또는 19-20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령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22-33 아내와 남편의 관계
바울은 다시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교회의 속성을 설명합니다. 아마 에베소서 안에서 교회를 가장 은유적으로 표현한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먼저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23절)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들에게 범사에 복종해야 합니다. 중요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범사에’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종하고 저것은 복종하지 않고가 아니라 모든 일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끝인가? 아닙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25절에 보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처럼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 28절에 보니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내 몸처럼, 즉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리입니다. 창세기 2장으로 가보십시오, 아담을 하와를 보고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선언합니다. 곧 ‘너는 곧 나다’라는 뜻입니다. 한 몸을 이루어야 함을 말합니다. 28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바울은 말하기를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내와 남편의 은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자기 남편에게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Views: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