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1:1 – 2:7 묵상

그 사랑에 취한 자여

아가서 1장 1절부터 2장 7절까지는 아가서 전체 구조 가운데 서문과 첫 번째 노래의 중심을 이루며, 술람미 여인과 신랑 사이의 사랑이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본문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를 향한 사랑의 서사로 읽혀야 하며, 복음 안에서 회복된 사랑의 본질과 그 깊이를 노래합니다. 이 사랑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망과 주님의 이름의 향기

“솔로몬의 아가라 그가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1-2)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가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아가'(שִׁיר הַשִּׁירִים)는 ‘노래들 중의 노래’, 곧 최고의 노래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이 노래는 단순한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신부 된 교회의 사랑을 비유하는 경건한 시입니다. 칼뱅은 이 책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와 맺는 신령한 결합을 이해하기 위한 신비로운 문학”이라 보았습니다.

2절에서 여인은 그분의 입맞춤을 갈망합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애정을 넘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를 갈망하는 영적 고백입니다. ‘입맞추다'(נָשַׁק)는 구약에서 화해와 연합의 상징으로도 사용되며, 이 고백은 성도가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원하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의 사랑을 포도주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포도주는 성경에서 즐거움과 기쁨의 상징이지만, 주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깊고 순전한 만족을 줍니다.

“네 이름이 향기름 부음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니라”(3절)는 고백은 하나님의 이름, 곧 그분의 인격과 사역 자체가 향유처럼 향기롭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향기름 부음'(שֶׁמֶן תּוּרַק)은 희생 제사나 왕의 기름 부음에 사용되던 귀한 향유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들을 때마다, 기억될 때마다 영혼에 깊은 향기를 남깁니다. 마태 헨리는 이 말씀을 두고, “하나님의 이름은 성도들에게 있어 향유와 같아서,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은혜의 냄새가 피어난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었다'(4절)고 고백합니다. 이는 주님과의 교제가 사적이고 친밀한 차원으로 깊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단지 외적인 예배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나는 검지만 아름답다,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부르시는 은혜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 1:5)

이제 여인은 자신을 향한 내면의 갈등과 외면의 시선을 고백합니다. ‘검다'(שְׁחוֹרָה)는 햇볕에 탄 외모를 가리키며,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할 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된 자의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칼뱅은 이 구절을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비천을 아는 자가 비로소 자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게달의 장막은 유목민의 검은 천막을, 솔로몬의 휘장은 성전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는 영광스럽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존귀하고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여인은 자신이 어머니의 아들들에게 천대받아 포도원 지기를 강요받았다고 말합니다(6절). 이는 사회적 억압과 자기 존재감의 상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내가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고백함으로, 자신의 무지와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자를 택하셔서 사랑하십니다. 이는 자격이 아닌 은혜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그녀는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여'(7절)라 부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갈망합니다. 이 고백은 영혼이 주님을 찾는 신자의 간구입니다. 낮의 더위와 양 떼를 모는 수고 가운데서도, 주님과의 교제를 잃지 않기를 원하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에 취해 안식하다

“내가 살진 암말에 비유하였구나 내 사랑아” (아 1:9)

이제 신랑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는 여인을 향해 찬사를 보냅니다. 당시 전차를 끄는 살진 암말은 가장 귀하고 강한 동물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신랑이 보는 신부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 보는 나의 모습은 능력 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11절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을 만들되 은을 박아 만들리라’는 고백은 신부를 장식하려는 신랑의 애정 표현이며, 신자가 말씀과 은혜로 단장되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장된 예배자, 준비된 신부로서의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12절부터는 여인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내면의 향기를 묘사합니다. ‘나의 왕이 침상에 앉아 있을 때에 나의 나드 향기가 풍겨 나온다'(12절)는 말씀은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삶의 향기를 뜻합니다. 이는 행위로 만드는 향기가 아니라, 임재 안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신랑은 그녀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라 표현합니다(14절). 엔게디는 사해 근처의 생명수와 같았던 오아시스로, 고난 중의 위로를 의미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는 메마른 광야 속의 향기로운 생명입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서, 여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2:1)로 고백합니다. 이는 들꽃과 같은 겸손한 자아 인식이지만, 주님은 곧바로 그녀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절)라고 응답하십니다. 이는 세상 속에서 구별된 자로서의 신자의 아름다움을 말해줍니다. 불링거는 이 구절을 주해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도 순결함을 유지하는 백합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늘을 기뻐하며 열매를 달게 먹는다'(3절)고 고백합니다. 이는 주님의 보호와 공급하심 안에서의 안식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 그늘이며, 생명의 열매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사랑으로 나를 회복시키고 건포도병과 사과로 나를 힘 있게 하라'(5절)고 간구합니다. 이 사랑은 피상적 위로가 아니라, 존재를 소생시키는 은혜의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2장 7절에서 여인은 당부합니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 이는 사랑의 성숙함에 대한 교훈입니다. 사랑은 인위적 타이밍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피어나야 합니다. 칼뱅은 이 구절을 두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인간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때에 따라야 하는 신성한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석했습니다.

전체 마무리

아가서 1장 1절부터 2장 7절까지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며, 성숙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의 시선과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택하심을 입은 자, 자신을 초라하다 고백하지만 주님 눈에는 아름다운 신부로 여겨지는 자, 주님의 향기에 취해 살아가는 존재.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이름의 향기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배의 자리에서 떡을 떼며, 그 사랑의 그늘 아래 안식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욕망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사랑에 취한 자여, 주의 사랑을 깨달았거든 이제 흔들지 말고, 조용히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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