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9가지 열매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소개되는 곳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23절입니다.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으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의 해석

성령의 9가지 열매의 간략한 설명

  •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며 자기 희생입니다. 사랑은 죄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 희락은 기쁨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죄에서 구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이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의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입니다.
  • 화평은 평화 또는 화평을 말합니다. 죄를 싫어 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이후 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오래 참음은 소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계속 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 자비는 친절함을 발하지만 태도보다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죄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근거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절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자비를 베풀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자비롭게 할 수 있습니다.
  • 양선은 선함으로 번역되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이 본 받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충성은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두 곳으로 갈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향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하나님에 대한 철전한 신뢰와 믿음에 근거합니다.
  • 온유는 타인을 대할 때의 태도로 부드러움을 뜻합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진정한 온유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가를 알 때 타인에게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 절제는 만족의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고 불필요한 곳에 자신의 정욕을 불태우지 않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랑(ἀγάπη love)

바울은 9가지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먼저 사랑을 언급합니다. 사랑은 헬라어 아가페를 사용합니다. 아가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를 하지만 신약 성경 안에서 아가페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할 때만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천적 사랑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모든 것을 허비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것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천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헌신 없는 사랑은 거짓말입니다.

희락(χαρά joy)

성령의 두 번째 열매는 희락 즉 기쁨입니다. 성령의 열매, 즉 그리스도인의 소양 중의 하나가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슬픈 일이 많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힘든 일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기쁨이 그리스도인의 소양이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때문입니다.

화평(εἰρήνη peace)

화평은 구약의 샬롬(또는 살롬)을 번역한 것입니다. 샬롬에 대한 부분은 이전 글 “여호와 샬롬‘을 참조해 주십시오. 샬롬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죄인들과의 화해를 말합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절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샬롬은 그리스도로 인한 화평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다 말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의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5)

요한 역시 예수님은 화목제물이라 말합니다.(요일 2:2, 4:10) 진정한 평화가 하나님과 죄인들간의 화해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을 중간에서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가 되십니다.

오래참음(μακροθυμία patience)

오래 참음, 즉 인내는 소망을 전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궁극적인 선이라 하나님의뜻이 이루어지는 구원과 생명을 뜻합니다. 소망은 결과에 대한 분명한 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앎은 정보가 아니라 믿음에서 난 앎이며, 생명의 지식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육식의 장막이 사라진다 해도 하늘의 장막을 입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4)

소망이 없는 자는 인내하지 못합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는 자는 쉽게 무너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시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전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소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비(χρηστότης kindness)

자비의 다른 말은 긍휼입니다. 헬라어 크리스토테스는 ‘선’과 ‘착함’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롬 3:12에서 ‘선’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7에서는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번역하여 예수 그리스를 주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비의 궁극적인 의미는 자신의 아가페적 사랑을 의미하며,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는 ‘존재적 사랑’을 말합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그 사람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내면의 소양이라면 자비는 타인을 향한 사랑의 표출이라할 수 있습니다.

양선(ἀγαθωσύνη goodness)

양선으로 번역된 아가소스네는 여성명사형으로 선을 행하다는 뜻입니다. 본질적인 선을 뜻하며, 오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오는 선입니다. 아가소스네는 신약에 오로지 네 번(롬 15:14, 갈 5:22, 엡 5:9, 살후 1:11)만 사용되었습니다.

  • 롬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살후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양선은 선과 착함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특히 엡 5:9에 의하면 양선은 빛의 열매로 소개됩니다. 빛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며, 결국 양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듭난 자들이 가진 속성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통해 이루시는 착함이 바로 양선입니다.

충성(πίστις faithfulness)

충선의 원뜻은 ‘신실하다’ ‘변하지 않는다’입니다. 우리가 누구가를 향해 ‘너는 믿을 수 있어’라고 말할 때의 의미가 바로 ‘충성’이 가진 원뜻합니다. 한 마디로 변하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충성이 성령의 열매인 이유는 이처럼 충성 자체가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충성의 다른 의미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섬기고,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명예를 따르고, 권력을 섬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두 사람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야고보는 이러한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약 1:6) 같다고 말합니다. 충성은 변치 않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충성은 무엇을 향한, 어디를 향한 충성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충성이고, 결국 하나님을 향하는 충성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는 사람들에게도 충성합니다. 진정한 충성은 순수하며, 왜곡되지 않으며, 진정한 것입니다.

온유(πρᾳΰτης gentleness)

온유는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한글 번역은 ‘온유’로 번역합니다. 온유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즉 친절이 온유입니다. 그래서 영어는 gentleness로 번역했습니다. 친절한 사람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속이려는 자와 다른 하나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온유의 어원인 프라우스(πραΰς)는 겸손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만 겸손에는 타인을 나처럼 사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는 타인을 나처럼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하고 악한 자인가를 정확히 인지하는 자는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손합니다.

팔복에서 온유(πραΰς)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사람들의 존중을 받게 됩니다. 땅을 기업을 받는다는 말은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결국 그 사람도 돌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절제(ἐγκράτεια self-control)

절제는 만족에서 나옵니다. 만족은 무능이 아니라 인내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절제는 더 할 수 있으나 하지 않고, 더 행할 수 있으니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의 자리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절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복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에 대한 만족에서 생깁니다. 만족은 감사이며, 감사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신뢰이자 믿음에서 일어납니다.

오늘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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