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는 아담과 함께 창조된 최초의 사람이자 최초의 여성이다. 최초로 타락한 자이며, 남편인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어 타락하게 한다.
하와의 생애
하와의 창조와 뜻
하와의 뜻
영어로는 이브(Eve)라고하는데 왜 한글 성경은 하와라고 할까? 하와는 히브리어 살아 있다는 뜻인 하아(חַוָּה)를 그대로 직연한 것이다. 하와라는 이름은 타락 직후인 창세기 3장 20절에 등장한다.
- 창 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라
한글 성경은 하아에 ‘생명’이란 각주를 들었다. 왜 하필이면 ‘살아 있다’가 이름이 되었을까? 그것은 타락 이후 죽을 것을 두려워했던 아담의 조바심과 두려움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마디로 하와의 이름은 당장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잠깐 그들의 죽음을 유보함으로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와는 살아 있다는 안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배려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와의 창조
하와의 창조는 두 번에 걸쳐 소개된다. 먼저는 창세기 1장 두 번째는 2장에 등장한다. 먼저 하와는 창세기 1장에서 첫 사람 아담처럼 하나님의 형성과 모양으로 창조되며, 하나님께 복을 받은 존재이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일을 함께 받는다. 즉 그녀는 아담과 한 몸이 되어 동일한 사명을 가진 존재이다.
2장에서는 뜻 밖으로 모습으로 그녀의 창조가 소개된다. 처음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된다.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할 때 아담의 ‘돕는 배필’로 창조된다. 우리는 여기서 하와가 아담에게 종속된 존재 잘못 이해하지만 반대이다. 돕는 자는 아담 보다 더 강한 존재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하나의 목적을 가진 동일한 사명자요 운명을 지닌 존재란 뜻이다. 누군가는 ‘에제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옳지 않다. 돕는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의미다.
갈비뼈는 심장을 보호한다. 그래서 돕는 배필과도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 마음과 정신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심장’이 아니다. 고대인들은 영혼이 ‘창자’에 있었다고 믿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긴다고 할 때, 긍휼이란 단어는 창차가 되틀린다는 뜻이다. 현대에도 마음이 상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스트레스 즉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호르몬 작용이 뒤틀려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고대 사람들이 판단이 더 옳다고 할 수 있다.(그 부분은 이 글을 참조하라)
중요한 의미는 하와는 아담에게서 왔으며, 남자와 한 몸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하와의 탄생은 그의 소명인 남자를 돕는 배필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의 타락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말해 주기도 한다. 하와는 창조 직후 아담에게 ‘자기’와 같은 존재였다.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최상급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하와는 아담 자신이다.
이러한 하나 됨은 2:24에서도 드러나며, 율법에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과도 일치한다. 이스라엘 전체는 하나이며, 한 몸이다. 신약의 교회 또한 주님의 지체이며, 교회는 한 몸이라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와의 탄생은 아담의 자기 확장이자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의 출현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성경에서 시작되었다.
하와의 타락
타락의 의미
하와의 타락은 매우 중요하다. 먼저 그 의미를 찾아보자. 하와의 타락은 ‘절대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 최초의 반항이자 불순종이다. 그리고 타락은 그들의 사명과 직결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도록 했다. 이 때 하와는 창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계명은 아담에게만 주어진 것일까? 아니다.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렇다면 아담은 그 계명을 하와에게 교육해야 한다. 하지 않았을까? 했다. 뱀에게 이야기할 때 하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하와는 모호하게 답한다. 이것이 하와의 책임일까? 타락 전후를 살피면 이 타락은 아담의 방조 아래 일어나 하와의 일탈이라고 해야 옳다. 즉 아담의 속사람이 하와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진지하게 하와에게 교육 시키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도 사실 먹고 싶었다. 이러한 추론은 하와와 뱀과의 대화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나고, 두 번째는 하와가 선악과를 건넬 때 기뻐 먹었다는 것에서 확증 된다. 자신이 불순종하고 싶은 데 어찌 하와를 제대로 가르쳤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변명은 아주 패악스러운 것이다.
타락의 과정
하와의 타락을 깊이 보아야 한다. 먼저 뱀이 하와를 찾아와 말을 건다. 뱀의 질문은 교묘하다. 하와의 심중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하와는 뱀의 질문에 답한다. 뱀은 속이려는 의도로 질문했다.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에 대화는 뱀의 주도가 된다. 결국 하와는 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넣는다.
뱀은 선언한다. 하와의 대답에서 하와를 간파한 뱀은 하와에게 거짓말로 선동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2:17)하셨다. 하와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여자는 선악과를 보았고, 탐욕이 일어났다. 결국 자기도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함께 타락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반드시 타락한다. 틈이 보이면 악마들은 교묘하게 덫을 놓고 공격한다. 결국 그에게 치명적인 독화살을 날린다. 진리에 확고하게 서야 한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확신하고 신뢰해야 한다.
타락 이후
하와는 타락 이후 가장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춘다. 2:25에서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와 얼마나 배치 되는가. 이처럼 타락은 관계의 죽음을 가져온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 두 사람은 한 몸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서로에게 타자가 되었고,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와는 변명한다. 그녀는 ‘뱀이 나를 꾀므로'(3:13) 먹었다고 변명한다. 정확히 아담이 여자를 핑계 삼는 것과 닮았다. 결국 여자는 저주를 받는다. 남자를 갈망하나 지배를 당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담 처럼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다.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큰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고통을 겪는다.
[교훈]
하와는 아담은 돕는 배필로 지어졌다. 남편인 아담과 함께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모든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 또한 에덴 동산은 경작하고 지켜야 한다. 슬프게도 하와는 지키지 않았고 죄악을 들어오게 했고 타락했다. 아담을 도와야 하지만 오히려 타락하게 했다. 이런 점에서 하와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담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녀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에대한 전체적인 평은 결코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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