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가인 Cain

가인은 창세기에서 부정적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낳은 자식이자 아들이다. 또한 동생 아벨을 살해한 최초의 살인자이다. 결국 하나님께 저주 받지만 하나님의 벌을 부정한다.

가인의 생애

가인의 출생

타락 이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 동쪽에서 거주한다. 성경에서 동쪽은 저주 받은 장소이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거하는 곳이다. 서쪽으로의 이동은 구원과 직결된다. 아브라함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약속을 받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동쪽으로 포로로 잡혀간다. 동쪽으로의 이동은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이자 구원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귀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과 하와의 동쪽으로의 이동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브람과 헤어진 롯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시날평지가 동쪽으로 이동하다 정착한 곳이란 개념은 우연이 아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한다. 동침하다는 ‘경험하여 알다’는 뜻이다. 한글성경은 의역하여 ‘동침하다’로 번역했다. 하와는 임식하여 가인을 낳는다. 가인을 낳은 후 그녀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번역체는 평범해 보이진 히브리 원문으로 들어가면 의미가 살짝 달라진다. ‘말미암아’로 번역된 ‘카나-‘(קָנָה)는 ‘요구하다’ ‘획득하다’ ‘사다’ ‘얻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1절을 의역한다면 ‘내가 여호와께 요구하여 아들을 얻었다’이다. 주어인 ‘내가’가 문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한다. 5장 3절에서 셋을 언급할 때 주도권이 하와가 아닌 아담으로 넘어가고, 하와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점을 보면 하와의 교만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러한 묘한 분위기는 4장 전체에 걸친 가인의 배신으로 도드라진다. 가인의 탄생은 하와의 자랑이자 교만이다. 하와는 자신과 닮은 아들을 낳음으로 자신도 하나님과 같은 창조적 능력이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낳은 아들이 천사가 아니라 악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제사와 살인

제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는 기이하다. 우리는 곧장 히브리서로 넘어가 아벨의 ‘믿음의 제사’로 초점을 맞추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믿음이라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로는 생각이나 확신이 아니라 ‘순종’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순종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의 계시가 먼저 있어야 한다. 둘째, 믿음은 제사 뿐 아니라 성품까지 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는 삶과 직결된 삶의 문제인 셈이다. 이 부분은 마태복음 5:24에 나오듯 제자보다 화해가 먼저다.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인 동시에 이웃과의 화해가 연결되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가인이 얼마나 왜곡되고 뒤틀렸는가를 잘 보여준다.

농사와 양치기

2절 후반절은 잠깐 살펴보자.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의 히브리어는 ‘וַֽיְהִי־הֶ֙בֶל֙ רֹ֣עֵה צֹ֔אן וְקַ֕יִן הָיָ֖ה עֹבֵ֥ד אֲדָמָֽה׃’이다. 직역하여 아벨은 양을 지키는 자이고, 가인은 땅을 섬기는 자이다.’ 여기서 다시 경작하다인 ‘아바드'(עָבַד)가 등장한다. 가인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린 저주 또는 사명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바로 여기서 아담과 하와가 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가인은 ‘더하다’는 의미처럼 아담의 탄생은 아담과 하와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고, 또한 그로인해 교만하게 했다. 두 사람이 가인에게 거는 기대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 만큼 막중했다. 바로 이러한 왜곡된 사랑은 가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판단에 모욕을 느끼고, 아벨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인의 살인

가인와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는다. 여기서 두 사람의 제물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기로 하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가인의 제사가 열납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음에 대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찾아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결국 가인은 아벨을 들로 불러 내어 돌로 쳐 죽인다. 최초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동생을. 가장 종교적인 이유로 타인의 생명을 취한다. 앞으로 종교적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가인이 받은 저주

유리하는 벌, 하지만

아벨의 살해 후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을 찾아 오신다. 이 모습은 타락 후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모습과 닮아 있다. 죄인들을 찾아오신 이유는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다. 어찌하며 용납이 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죄인들을 회개 시키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유리하는 벌을 내리신다. 땅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이후 계속 떠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인은 후에 하나님의 벌을 거부하고 ‘유리하다’의 뜻을 가진 놋 땅에 자신의 아들 에녹의 이름을 따라 성을 짓고 거주한다. 5장의 에녹도 동명이다. 에녹이 ‘바치다’ ‘시작하다’ 의 뜻인 것을 볼 때 아담은 성을 지으면서 자신의 아들을 신?에게 바쳤을 가능성도 제기 된다. 마치 저주 받은 성인 여리고 성을 쌓은 히엘이 자신의 두 아들을 제물로 바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맥락이다. (히엘이 우상에게 드렸다는 말이 아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성을 지을 때 장자와 막내를 잃는다는 저주가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여리고성을 쌓음으로 간접적으로 제물로 바친 것과 같다는 의미다.)

  • 수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가인의 저주를 떠 안은 아브라함

가인의 저주가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난으로 불러 내신다. 아브라함은 가인이 거부했던 유리하는 벌을 떠 안는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믿음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힌다.

  •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가인의 후손들

가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후손들을 소개하며 연장된다. 특히 라멕은 가인보다 더할 살인자로 소개된다. 라멕은 후에 따로 다룰 것이다. 결국 가인의 후손들은 문명을 개발하지만 더욱 악한 자로 퇴행 한다. 그들은 이 땅에 더 많은 악을 퍼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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