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강해

마태복음 8장 해설

마태복음 8장은 짧막한 6가지 내러티브로 구분되어 있다. 14-17절은 8장의 중심이자 예수님의 사역 전반을 요약하고 있다. 질병을 치유하고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소개한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예수님을 따를 때의 희생과 치유 사건, 기적이 소개된다.

만약 14-17절 18-22절 두 부분을 중심으로 잡는다면 예수님의 치유와 제자도는 대칭구조로 볼 수 있다. 둘 다 예수님의 희생이 전제 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충 구조로 보는 것도 매우 유용하다. 8장의 중요한 메시지는 10-12절, 34절에서 보이듯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구조

  • 1-4절 나병 환자를 치유하심
  • 5-13절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 14-17절 연약한 것과 질병을 짊어지신 예수
  • 18-22절 주님을 따르려면 치러야할 대가
  • 23-27절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심
  • 28-34절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치유하심

마태복음 8장 강해

1-4절 나병 환자를 치유하심

산에서 내려오시니

산상수훈을 마치신 주님을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작은 언덕에 불과한 곳을 마태를 ‘산’으로 지칭함으로 산 위에 건설된 예루살렘을 의도적으로 대입시키려합니다. 산은 고대 세계에서 신들이 거하는 곳으로 신령한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좌정하심으로 시편 2편에서 예언한 시온의 왕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보좌에만 거하지 않고 ‘내려 오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친히 하늘 보좌에서 이 땅에 오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낮고 천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가장 낮은 자들의 거처에 오시며, 그들의 장막이 되어 주십니다.

원하시면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나병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사람들과 격리 되어 살아갑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벗어나 고독하고 쓸쓸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위치면 자신의 부정함을 공개하고 사람들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찾았습니다.

나병환자는 주님께 와서 절하며 주님께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자신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주님의 ‘마음’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그는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나병환자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고 주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들이 응답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처럼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긍휼을 구하는 자들이 완전한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3절은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율법에서 부정한 것을 만지는 자는 부정해 집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십니다. 놀랍게 주님이 만지자 그는 치유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자신을 정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정결함을 받고 복음을 모든 부정한 자들을 정결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자 ‘그의 나병이 깨뜻하여 진지라’라고 설명합니다.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주님은 그들을 치유한 후 그냥 보내지 않고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함을 증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정한 자들이 정함을 받는 것은 단순한 치유를 너머 제사장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승인으로 그는 이전처럼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부정한 자가 정결하게 되었음을 공적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신앙고백은 공동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되어야 하고, 목회자의 공적 선언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모든 공동체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받아 들이게 됩니다.

5-13절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주여 내 하인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자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괴로워하나이다”

주님은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특이한 장면입니다. 당시 하인은 거의 물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으로 상당한 지위를 지녔는데 예수님께 ‘주여’라고 부르며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 청합니다. 얼마나 자신의 하인을 사랑했으면 부끄러움을 참지 않고 부탁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러한 백부장의 마음을 아시고 고쳐 주겠다 약속하십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백부장은 예수님이 직접 가시겠다고 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며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의 말은 명령에 순종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의 병도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유대인 사회 안에서 이방인인 백부장이 철저한 순종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앉으려니와

주님은 이방인인 백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는 본자손들인 유대인들은 쫓겨 나가지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된다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주님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치유와 기적의 역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동일한 주님 이시지만 누군가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누군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크기가 기적의 크기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얼마입니까

14-17절 연약한 것과 질병을 짊어지신 예수

베드로 – 그의 장모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준 주님은 베드로가 기거하는 베드로 장모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곳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주목할 점은 베드로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결혼하였다는 것입니다. 후에 베드로는 그의 아내와 함께 복음 사역을 감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집에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옵니다. 귀신들린 사람, 병에 걸린 사람들이 찾아오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고쳐 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표현인지 모릅니다. 단지 말씀 만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십니다. 백부장 하인의 병을 단지 말씀으로 치유한 것처럼 주님은 오직 말씀으로 치유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오직 말씀으로 모든 것을 회복 시키십니다. 우리는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히 11:3)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18-22절 주님을 따르려면 치러야할 대가

저는 따르리다

한 서기관이 주님을 찾아와 주님께서 어디를 가시는 따르겠다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따르라’ 하지 않으시고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십니다. 주님의 엉뚱해 보이는 대답 속에는 서기관의 잘못된 제자도에 대해 질책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서기관은 매우 높은 직책으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는 위치였습니다. 특히 율법을 가까이 하고 연구하는 자였기에 율법에 능숙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고 주님을 잘 따를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라 착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그의 잘못된 환상을 깨기 위해 잠잘 곳도 없다 하십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생활은 원래 힘든 것이고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대가 없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다른 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한 다음 주님을 따르겠다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죽은 자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앞선 ‘죽은 자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하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 안에서 해석하면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당시 율법 관념에서 죽은 자들은 ‘부정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율법적 부정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역부좁입니다. 이 부분은 단어에 집착하기 보다 문맥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기관의 청은 거절했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을 뒤로 미루는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나를 따르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삶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제자에대한 충고로 보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하면서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식을 버리거나 부모를 져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23-27절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심

28-34절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치유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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