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강해

마태복음 2장 해설

2장은 예수님의 탄생과 애굽으로의 도피, 그리고 나사렛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을 찾아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놀라 소동한다.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지만 천사가 나타나 도피하게 한다.

  • 1-12절 동방박사의 경배
  • 13-18절 애굽으로의 도피
  • 19-23절 나사렛으로

1-12절 동방박사의 경배

헤롯 왕 때에

헤롯가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다. 에돔의 후예들인 이두매인들은 하스모니안 왕조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할례를 받았다. 그들은 이방인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이었다. 한 마디로 열등한 민족이었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에 대한 흠모와 미움이 공존했다. 헤롯은 교활하고 잔인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암울한 시대, 주권을 상실한 시대에 예수님은 태어 나셨다.

동방으로부터

성경 안에서 동방 또는 동쪽은 저주의 장소요 방향이다.구약에서 저주 받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쪽에 거했고, 멸망당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동쪽인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동방사람’이라 불렀다. 동방사람, 동방풍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런데 동방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역전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손이라 칭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저주 받은 이들이 하나님을 찾는 기이한 현상. 이것이 신약의 의미다.

그의 별을 보고

별은 사람이자 천사이다. 지금은 사람들은 죽으면 ‘별이 된다’ 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말한다. 별은 운명이고, 사명이다. ‘그의 별’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이다.

소동한지라

미친듯이 소리지른다는 뜻이다. ‘경악했다’라고 말해야 더 옳은 번역이다. 이미 유대인의 왕이 있음에도 그 왕을 무시고 ‘새로운 왕’을 경배하러 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미칠 수 밖에.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헤롯은 간교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물었다. 놀라지 않는가. 그냥 왕이라고 말했는 데 그리스도로 답한다. 헤롯은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은 가짜 왕이라는 것을. 진짜 왕이 올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이려 했다. 귀신이 더 빨리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무서워 한다.

베들레헴아

그들은 직각적으로 반응한다. 미가 5:2을 언급하며 메시아야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임을 알았다. 얼마나 성경에 정통한다. 그런데 놀랍게 그들은 예수님을 갈망하지도 경배하지도 않았다. 지식이 믿음은 아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하여 그가 참된 신앙인도 아니며, 참된 목사도 아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일 수도 있다. 조심하라.

동방에서 보든 그 별이

그 별은 ‘동방에서’ 나타났다. 그러니까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별을 보내심으로 그들은 이곳까지 이끄신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동방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고

별이 인도하자 동방 박사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아이와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경배한다. 누가복음은 마굿간이라고 말하지만 마태복음을 그런 표현이 없고, 그냥 집(οἰκία)이다. 집으로 번역된 오이키아는 오이코스(οἶκος)에서 왔다. 오이코스는 그냥 집이다.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일반 서민들이 거하는 집을 의미한다.

동방박사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이곳까지 왔다. 당시 여행을 위해서는 지금의 수십 배, 수백 배의 돈이 든다. 그들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지닌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기에게 엎드렸다.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도 경배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은 경배했다. 앞으로 복음서 안에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유대인들은 배척하나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고대한다.

황금 유황 몰약

황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왕권을 상징한다. 유향은 제사장직은, 몰약은 선지자직을 말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크리스마스 선물, ‘황금, 유향, 몰약’의 기호와 해석>을 참조 바람)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옳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 의미를 과도하게 편향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또한 이것들이 분명 귀하기는 하지만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다.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경배했고, 귀한 예물을 바쳤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 보자. 이 부분은 찰스 스펄젼의 설교가 명 설교다.

13-18절 애굽으로의 도피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다시 요셉에게 현몽한다. 마태복음은 요셉에게 지시한다. 헤롯이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애굽으로 잠깐 피신하라고 한다. 생각할 부분은 이 때 예수님의 나이는 최소한 24개월 쯤 되었다는 것이다. 태어난 지 며칠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후에 따로 다룰 것이다. 누가복음과 비교할 때 예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16절을 보면 ‘두 살부터’이다.

애굽으로 내려가 거한다. 저자는 호세아 11:1을 인용하여 출애굽 사건과 연관 시킨다.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애굽에서 올라올 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와 같은 맥락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 개입하시고 계시며, 역사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라헬의 통곡

참으로 기묘한 표현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어머니들의 슬픔이다. 바벨론이 유다를 정복하고 젊은 청년들의 대부분을 끌고 갔다. 1차적으로 모인 장소가 라헬이 베냐민을 낳으며 죽었던 근처였다. 그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포로로 끌려 가는 모습을 보며 울었던 것이다. 마치 라헬의 눈물처럼. 헤롯에 의해 자신의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자 수많은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이 통곡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19-23절 나사렛으로

헤롯이 죽은 후에

사람은 죽는다. 결국 죽는다. 교활하고 잔인하고 강력했던 헤롯이 죽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주의 사자가 다시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죽었다고 알린다. 요셉은 유다로 올라간다. 언제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아켈라오가 왕이 되니

유다로 올라오니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요셉은 눈물을 머금고 베들레헴에 정착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선지자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예언한 것을 이루었다 말한다. 하지만 구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표현이 없다. 저자는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부분도 따로 생각해 보자.

모든 일은 자신이 계획하고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이것이 진리다. 우리는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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