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의 고백을 담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드리는 기도
오래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히 계실 하나님,
시간의 주관자 되시며 그 너머에 존재하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영원의 광막한 장막 속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를 아버지의 손바닥에 새기시고
낱낱의 숨결마저 헤아리시는 주님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지금,
저희는 걸음을 멈추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은 결코 말없이 지나가지 않습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귀에는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벼락처럼 무겁고 아픈 질문들이 울려 퍼집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
“너는 누구를 사랑하였으며, 누구를 외면하였느냐?”
“너는 얼마나 낮아졌으며, 얼마나 주님을 닮았느냐?”
이 질문 앞에서 저희의 영혼은 벌거벗겨지고,
그 속엔 부끄럽고 어두운 것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 저희는 참으로 연약하고, 탐욕스러운 존재입니다.
때로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듯한 발걸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망을 좇았고,
때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오히려 사랑을 잃어버리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다가도
정작 우리의 손은 이웃을 외면하고,
우리의 마음은 날카로운 잣대로 그들을 저울질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천사와 같은 소망이 있고,
그 곁에는 짐승과 같은 욕망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도 없고,
또 완전히 버리지도 못하는 이 기묘한 애증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가 스스로를 구할 수 없음에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비록 연약한 흙으로 지어졌으나
그 안에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다시 당신의 손을 붙들게 하옵소서.
아버지,
시간은 저희를 채찍질하며 앞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 시간 잠시 멈추어 섭니다.
주님의 나라는 언제 올까요?
그 나라는 왜 아직 오지 않았을까요?
혹 주님, 저희의 완악함과 불순종이
그날의 지체를 더디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이제는 다가오는 새해를 기다리며,
저희가 남겨진 시간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남은 날 동안 저희를 정결하게 하시고,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세워 주옵소서.
주님,
사람의 끝은 주님의 시작이며,
사람의 한숨은 주님의 약속이 되며,
사람의 죄악마저 주님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한숨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깃들게 하시고,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가 빛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
마침내 주님께서 찬란한 빛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깨끗한 옷을 입은 자들이 되게 하소서.
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눈물이 씻겨지고, 모든 상처가 아물고,
모든 피곤한 영혼이 참 안식에 들 날을 소망합니다.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갈망과 우리의 노래는 단 하나이니,
“주님, 어서 오소서!”
새해를 향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소망도 결국 당신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저희의 모든 길을 당신께 맡기오니,
우리의 시선을 다시금 당신께로 고정하게 하소서.
우리의 소망과 시작과 끝,
그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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