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구원의 문턱에서
본문 요약 (누가복음 21:20-28)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인자의 재림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도성이 군대에 둘러싸일 때 멸망이 임박한 줄 알아야 하며, 그 날은 환난과 징벌의 날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징조들 속에서 신자들은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구속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구조
-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 (21:20-24)
- 인자의 재림 징조 (21:25-27)
- 구속의 확신 (21:28)
예루살렘, 심판의 도성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장면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에워싸이다”는 헬라어로 ‘κυκλόω'(kykloō)인데, 원형은 ‘둥글게 감다’, ‘포위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한 병력 배치를 넘어서 완전한 고립 상태를 묘사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던 도성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 거룩함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했습니다. 21절에서 예수께서는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 안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이 말씀은 도망 자체가 회피나 겁쟁이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성전을 떠나는 것은 곧 신앙을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것이 생명을 지키는 신앙의 행동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2절의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라는 구절은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이 예언했던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이제 도래한 것입니다. 헬라어 ‘ἐκδίκησις’(ekdikēsis)로 번역되는 ‘징벌’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정의를 바로잡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이제는 그분의 공의가 역사 위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특히 23절에서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라는 말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 겪을 고통을 강조합니다. 심판은 무차별적으로 다가오며,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됩니다. 이 ‘진노’는 헬라어로 ‘ὀργή’(orgē)인데, 감정적인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의에 따라 내려지는 무게감 있는 심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24절은 역사적으로 실제 이루어진 바,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온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모든 민족의 구원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인자의 날, 그 날이 온다
25절부터 장면은 하늘로 옮겨집니다. 예수께서는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있을 것이며,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민족들이 두려워 떨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징조’는 헬라어 ‘σημεῖον’(sēmeion)으로, 자연현상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계시와 권능이 나타나는 초자연적 사인을 뜻합니다. 단순히 기상이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들이 의지하던 질서와 기반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는 표현은 단순한 천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전제와 안정이 근본부터 흔들린다는 경고입니다. 인간은 과학과 문명 위에 살지만, 하나님 없이 세운 그 체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26절에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여 기절하리니”라는 구절은 극도의 공포 상태를 묘사합니다. 여기서 ‘기절하다’는 헬라어 ‘ἀποψύχω’(apopsychō)인데, 문자적으로는 ‘숨이 끊어지다’는 뜻으로, 공포가 생명의 에너지를 마비시키는 수준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순간, 27절에서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은 역전의 선언입니다. 그동안 고난받고 비웃음 당하던 예수가, 이제 능력(‘δύναμις’, dynamis)과 영광(‘δόξα’, doxa)을 가지고 나타나십니다. 이는 다니엘서 7:13의 성취이기도 하며, 인자의 재림은 역사 전체를 마감하는 구속의 절정입니다.
예수께서는 심판의 주로, 또한 구속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이 날은 의인에게는 소망이지만, 악인에게는 두려움의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장면을 단순한 ‘영화 같은 묘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현실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구속이 가까운 자들의 자세
마지막 28절,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은 이 본문의 정점입니다. 여기서 ‘머리를 들라’는 표현은 고대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한 병사가 고개를 당당히 드는 장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겁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구속을 바라보라는 권면입니다.
‘구속’은 헬라어 ‘ἀπολύτρωσις’(apolytrōsis)인데, 노예 상태에서 자유인이 되는 과정, 몸값을 치르고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사역은 바로 이 구속의 실현이며, 그 완성은 재림의 순간에 비로소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은 그 구속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구속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현재형으로 들려야 합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날은 어떤 이에게는 심판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신앙, 구원의 약속을 기억하는 믿음, 그리고 두려움 대신 소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단지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징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무너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마음을 세우고, 복음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21:20-28은 단순한 미래 예언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현재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회개 없는 신앙의 결과였으며, 인자의 재림은 종말의 공포가 아니라 구속의 완성을 뜻합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고, 종말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오늘 우리도 환난 속에 살아갑니다. 개인의 삶에서, 나라의 현실에서, 세계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아무리 세상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구속은 반드시 오며, 그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드는 사람들입니다.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워 숨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날이 올 때,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므로 오늘도 머리를 들고, 담대히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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