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하나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인의 삶
고린도후서 6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권면 한 후, 바울이 당한 환란과 역경을 소개하고,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 당부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저희는 어제 새 언약, 즉 복음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는 역설적 사역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5: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강권하다(συνέχω)’는 말은 ‘강하게 짓누르다’ ‘주도하다’ ‘고통을 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충동시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크니까 ‘뭐라도 해야 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충동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옛 사람의 타락한 습관과 악을 버리고, 오직 거룩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 창조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바울은 그 은혜가 지금 우리 가운데 이미 임했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라고 말합니다. 6장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구조
1-13절 바울의 설득
14-18절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
1-13절 바울의 설득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설득합니다.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1-2절에서 바울은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통해 복음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다르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음을 말합니다. 1-2절을 먼저 살펴봅시다.
새 언약, 즉 복음의 시대는 옛 언약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새 언약은 지극히 종말론적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임한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말미암안 구원을 얻게 합니다. 구원 얻음은 후일에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지금 당장 구원을 받아라’의 뜻이기보다는, ‘너희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귀중한가 아느냐? 그런데 아직도 복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죄된 삶을 살아가느냐’의 의미가 강합니다. 랄프 마틴이란 학자는 바울의 선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온 것은 메시아 시대, 즉 하나님이 그의 긍휼하심 가운데 사람들을 은혜로 받으시는 좋은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연 랄프 마틴의 말이 맞을까요? 바울의 이 말은 원래 이사야 49:8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사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다시 회복 시키는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 일종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된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은 다시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이 주십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이사야는 ‘은혜의 해’와 ‘구원의 날’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모든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고,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이 ‘은혜의 해요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소개합니다. 3절에서 자신의 직분이 비방 받지 않게 하게 위해 무엇에나 아무에게나 거리끼지 않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바울 자신의 잘못된 삶으로 인해 거부 당하고 부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입니다. 4-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초와 고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4-18절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
이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 봅시다. 바울은 14절에서 갑자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지금까지 해석상의 흐름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신자와 사업을 같이 하지 말라는 쪽과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멍에는 소가 일을 하기 위해 얻혀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마리 소가 쟁기를 끌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두 마리가 한 조가 되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의 의미는 만약 멍에를 같이 메게 되면 자기가 싫든 좋은 함께 행동할 것이고, 한 목적과 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비유로 삼아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멍에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린도전서 7:12-15에 의하면 믿지 않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 7장을 상세히 살펴보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바울의 목적은 결혼에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는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사업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15절과 함께 생각해보면 사업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15절에 의하면 사도바울이 경계하는 것, 즉 멍에를 함게 메지 말라는 것은 대단히 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벨리알이 조화되는 일’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불신자와의 결혼이나 사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죄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폴 바네트라는 학자는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금하고 있는 것은 신전 예배에 구체적이고도 전문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고린도전서 3:16-17로 돌아가 봅시다.
[고전 3: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다시 오늘 본문 고후 6:16를 보시다.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전’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 부르지 않고, 구속자로 믿는 이유는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통해 우리를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우상숭배의 문화 속에 빠져 성적으로 문란하고 방탕했으며, 그릇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있어서는 안 도리 일이 그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고, 타락한 삶을 지속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척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 됨을 일깨우며,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6절 후반부와 18절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나는 너희의 아버지다’라는 내용입니다. 호세아 11:1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미지는 구약 속에서 포로에서 회복하고 구원하는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신들의 아들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바벨론에서 불러내어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이것이 신약의 교회에 적용되어 죄와 사망의 포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유배에서 돌아온 백성, 죄와 죽음을 물리친 백성,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아들과 딸로 받아들이신 백성이라면, 당신은 이방 세계를 둘러보고 그 실상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고,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마무리
고린도후서 6장은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을 위해 바울은 먼저 우리가 받은 복음이 얼만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하고, 다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며 백성인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살아가야 함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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