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강해

고린도전서 9장 바울의 사도직 변증

8장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자기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9장에서는 사도의 권위와 절제를 말합니다. 9장은 8장의 예, 또는 더 자세한 설명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1-14절 바울의 사도적 변증

15-27절 바울의 자유

1-14절 바울의 사도적 변증

1-14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14절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생존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근거를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7절에서는 군인과 목자로 비유합니다. 9절에서는 신명기 25:4을 인용하여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은 것으로 비유합니다. 11절에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신령을 것을 뿌렸기 때문에 육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이 문제를 현대의 전임 사역자에 대한 원리로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먼저, 바울의 의도를 살펴봅시다. 바울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바울의 사도직이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장까지 세상의 지혜로 논쟁하고 파당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 파당의 형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도들이 최고라는 말하는데 있고, 다른 사도들의 권위를 깎아 내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왜곡되게 받아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고린도교회 안에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장으로 돌아가 보면 가룟유다를 대신해 맛디아를 사도로 뽑습니다.

[사도행전1:21-22]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조건은 이것입니다. 먼저는 모든 공생애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1절의 조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입니다. 결국 사도의 자격은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 즉 증인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악한 자의 편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기존의 열두 사도 외 다른 사도로 열외 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이나 신약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베드로와 같은 사도와 바울이 결코 권위나 증인의 삶에서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가? 먼저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연 난 자’라고 말합니다.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는 표현은 기존 사도들이 갖추어야할 자격을 완전하게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삭되지 않았지만 태어난 사람, 즉 사도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비록 다른 교회에서 사도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너희에게는 내가 사도이다’라고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합신대 총장이었던 조병수 교수는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에게 사도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의 사역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럴 수 없다. 고린도 교회는 부인할 수 없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역 결과이기 때문이다. ..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사역을 통해 주님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 바울의 ‘사도 됨’을 확인하는 ‘도장’이 된다. 성도가 사역자의 도장이다.”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통해 탄생한 교회입니다.(행 18:1-8)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전도하여 탄생한 곳이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바울의 피와 땀이 흘려진 곳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사랑과 수고를 잊어버렸습니다.

15-27절 바울의 자유

이제 두 번째 단락인 15-27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5절에서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써야할 권리를 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16절에서는 자신이 복음을 전한 이유는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 ‘부득불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 부득불 할인가? 바로 ‘사명’(17절)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땅히 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19절)입니다. 7:23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바울은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진작 바울 자신은 사람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바울이 9장에서 말하는 종은 사랑의 섬김을 말합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진정한 사랑, 바로 영혼을 구하기 위한 철저한 낮아짐을 말합니다. 19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처럼(20절),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역시 율법 없는 이방인처럼 되었습니다.(21절) 목적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들을 ‘얻고자 함’(21절)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을 보면서 ‘소신 없다’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주관도 없이 사람들의 비위만 맞춘다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자신을 철저히 비우면서 타인들에게 맞춥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2절의 말씀대로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참여함입니다. 바울은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참으로 인내하고 자신을 비웠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전도하며 살았지만 한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하고, 비위도 맞추어야하고, 손해도 봐야하고, 속도 썩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교회로 이끄는 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해 주어야 마땅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일이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25절) 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24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영혼을 구하는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 12:3 말씀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 다니엘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우리도 바울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앞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별처럼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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