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장 강해

고린도전서 5장 개요

본문 주해


1절 너희 중에 음행이 있다.


1-2절은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1절은 행위의 본질을, 2절은 교회의 반응을 언급하며 책망하다. 기가찰 노릇이다. 고린도 교회는 세상 속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도 없다는 바울의 말에 깊은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 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하다.

음행 프로네이아(πορνεία)는 값을 지불하고 창녀와 성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영어 포르로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윤락가를 드나드는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를 말한다. 당시 헬라 문화권은 이러한 성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세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2절 ~하지 않고


그리하고도 통한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교회가 썩어가고 있는데 그대로 안고 있다. 썩을 것은 빨리 잘라 내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심각성은 이것이 죄라는 사실에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랑(6절) 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교만하여져서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

-쫓아내지 않았다.

교만 φυσιόω은 부풀려지다. 풍성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말한다. 교만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과장하는 것이다. 영적 교만은 실로 사탄에서 온다. 영적 교만은 모든 것을 자신이 판별하여 그것이 진리라고 믿게 만든다. 즉 영적인 내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통탄과 추방으로 대응한다. 이로토록 영적 교만이 무섭다.

3절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다. 이미 판단했다. 바울은 멀리 있지만 직접 가서 판단할 필요도 없이 소문만으로도 이미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4절


판단하는 것은 바울 개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 영고 함께’있다 선언함으로 주도권을 고린도 교회에 넘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임을 드러낸다.

5절 사탄에게 내주었다.


난제 가운데 하니지만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표현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충분히 벌을 받게 내버려 두라는 뜻이다. 바울 서신 안에는 이러한 표현이 종종 있다. 쉽게 말해 광야에 내 던지는 제물과 같은 존재이다.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으로 이 구절을 풀면 안 된다. 그는 결국 구원받기 때문이다. 5절을 유심히 읽어 보라.

6-8절 유월절 떡


바울은 교회의 음란의 문제를 곧장 유월절로 끌고 간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시작점이다. 이들은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고,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쓴 나물을 먹었다. 고난과 구원의 긴박성을 담아낸 음식들이다. ‘누룩 없는 자’ ‘새 덩어리'(7절) ‘누룩이 없는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8절)은 순수해야 할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한다.

9-13절 밖에 이는 사람들


12절과 13절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 안에 머물고 있는 음행 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자와 ‘밖에 있는 자들’을 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본문 강해

1-8절 교회 안의 누룩


1-6절 교회 안의 누룩


5장은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근친상간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시 헬라 문화 안에서는 통용되는 일반적 사안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절 중반에서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 안에는 없다고 드릴 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좀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행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거룩과 권위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절의 등장하는 ‘그 아버지의 아내’가 누구인지 학자들 간의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로 얻은 여성으로 봅니다. 이유야 어떻든 대부분의 이방인들조차 금하는 죄가 고린도교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바울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화가 났던 이유는 이러한 죄가 교회 안에 있음에도 교회 안에 성도들이 아무런 죄책이나 통한히 여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교만’했고, 6절에 의하여 그들은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자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죄를 짓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아무런 죄책도 없고, 오히려 좋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음행의 문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영적·신학적 상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어제 4장을 살피면서 바울이 ‘기록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4:6)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충돌과 시기, 작은 죄들이 쌓여 결국 크고 중대한 범죄로 이어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누룩’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이 숨겨져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면 점점 온 덩어리에 퍼져나갑니다. 이처럼 작은 죄들을 그대로 두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죄로 물들게 합니다.

7-8절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7절)고 충고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누룩이 온 공동체를 썩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룩의 이야기를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에서 가져옵니다. 놀랍게도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양이 곧 ‘그리스도’(7절)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빵은 원래 누룩을 넣어야 맛이 있고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때는 빨리 애굽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누룩에 부풀릴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유월절의 누룩 없는 빵은 거룩과 순결을 상징하기 전에 구원의 긴박성을 말합니다. 누룩은 평온과 행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출애굽 당시에는 나태함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말합니다. 마치 지난주에 담임목사님께서 언급한 롯의 처의 세상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과 사랑을 버리고, 속이 주님께로 돌이켜 거룩하고 순결한 삶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병수 교수는 8절의 ‘명절을 지키라’를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진 유월절의 잔치처럼 되게 하자’로 해석합니다.

9-13절 전 편지에 대한 재설명


9-13절은 전 편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던 부분에 대해 다시 설명합니다. 아마도 전 편지에서는 음행 하는 자들과 완전하고도 완벽한 결별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10절)이라고 말합니다. 음행의 죄뿐 아니라 다른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할 일은 모든 세상의 거룩이 아니라 교회 안의 거룩으로 한정시킵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세상의 행악자들에 대한 불가피한 허용을 정당한 것으로 해석해버렸다는 점입니다. 고린도후서 6:14-7:1까지를 보면 이들이 허용을 친밀한 사귐으로까지 끌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약간의 틈만 보여도 그 틈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밖의 문제는 교회 밖의 일로 남겨두고 교회 안의 음행자들을 ‘내쫓으라’(13절)고 말합니다. 김세윤 교수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성과 순결성을 보존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을 뿐이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다는 말은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 교회가 잘라 내야 할 세상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먼저는 음행 하는 자입니다. 음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육체적 만족의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는 넘어 타인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세 번째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다른 말은 탐심입니다.

  •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과 우상숭배가 함께 엮어진 곳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에베소서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모욕과 술 취함, 속여 빼앗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들을 넘어서는 행위들입니다. 모든 악은 4:6에 기록된 대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벗어나 육신과 욕망을 따라 사라는 삶입니다.

마무리


5장에서는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음란의 행위 자체보다는 악을 옹호하고, 자랑하는 그릇된 영적 상태에 있었습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죄 안에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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