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 강해

고린도전서 3장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하라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분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지혜로 다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고 강요했습니다. 1장 중반부에 2장에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2장에서는 십자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말합니다. 이제 3장에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동역자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가 다툼의 이유가 되는 하나님의 일꾼들에 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아볼로나 게바나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에 불과하여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초’가 아닙니다.

1-4절 책망: 육신에 속한 자들

5-9절 하나님의 동역자: 밭의 일꾼

10-17절 하나님의 동역자: 건축가들

18-23절 결론: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다.

1-4절 책망: 육신에 속한 자들

바울은 먼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책망의 근거는 그들이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3절) 육신에 속해 있다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분쟁과 시기’(3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르는 행하는 것입니다. 1장에서 언급한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도를 추종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신에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만약 제가 설교나 어떤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저를 자랑하고, 저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든다면 육신에 속한 자일 것입니다. 목회자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의 팬을 만들거나, 자기를 사랑해줄 성도를 모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고 교만한 것입니다. 사실, 제 자신도 설교를 하면서 혹시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지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5-9절 하나님의 동역자: 밭의 일꾼

5-9절까지는 하나님의 동역자를 밭의 일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아볼로나 바울이 누구냐.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일뿐입니다. 6절에서는 복음 사역에 비유하여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마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 아볼로가 고린도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가르치고 돌보는 사역을 잠시 동안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7절에서는 심는 것도 물주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7절)이라고 강조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 아닙니까? 아무리 심고 줄을 주고 가꾸어도 하나님께 자라게 하지 않으면 절대 자랄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극히 조심해야합니다. 자신이 설교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설교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성도들에게 은혜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영적인 것을 받았으니 육적으로 것으로 보답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마땅한 대우이고 예일뿐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도구요 말씀의 일꾼일 뿐임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사역자들은 자기가 한 일대로 각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0-17절 하나님의 동역자: 건축가들

5-9절에서는 밭에서 일하는 일꾼의 비유로 복음전도자들을 설명합니다. 이제 10-17절에서는 건축가의 비유로 넘어갑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사역이 양육이나 깊이 있는 성숙한 가르침보다는 개요적이고 개략적인 복음전도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역량에 벗어나는 일는 아볼로에게 위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가 동역하고 아름다운 사역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는 잘 못하지만 같이 대화하고 고민들을 들어주면서 성경적인 조언을 잘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엌일도 모든 사람이 분업을 잘할 때 일이 힘들지 않고 쉽게 잘 됩니다. 모든 사람이 배추 자르기만 잘하면 절이고 김칫소는 누가 넣습니다. 일이란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편하고 맛있는 김장이 담가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터를 닦아 놓은 사람으로 소개하며 그 위에 어떻게 세울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닦아 놓은 그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11절)이기 때문입니다. 12-15절을 통해 본다면 터 위에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 즉 성도의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어떤 이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것으로 세우고, 어떤 이들은 나무나 풀, 짚으로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아기 돼지 삼형제가 집을 짓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문제는 이러한 건축은 후에 불이 그 세운 공적을 시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핵심은 건축물이 아니라 ‘불’입니다. 성도의 삶은 결국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만약 불시험을 통해 공적이 남게 되면 상을 받고(14절), 공적이 불타게 되면 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15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만약 14-15절 말씀을 16-17절에 근거해 해석한다면, 나무나 짚과 같은 불타는 공적은 육적인 삶과 방탕한 삶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초반부에 언급한 바로 육신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해야 15절의 후반부가 논리적 타당성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간다 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거나, 육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할 것이고, 결국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혼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으면 안 됩니다. 6:9에서 바울은 육신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이 부분에 6장을 나누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16-17절의 말씀에 집중해 봅시다. 바울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16절)이라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라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18-23절 결론: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18절)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입술로는 거룩을 외치면서 삶은 타락한 삶을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지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지혜있는 척,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자가 되라’(18절 중)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19절)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꾀에 빠지게 하’(19절)십니다. 세상의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합니다. 사람을 자랑함이 무엇입니까? 육신적 삶을 사는 것이며,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주 안에서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어 자신들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 즉 사람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리석고 헛된 것입니다. 고든 피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를 ‘더 이상 지도자들을 자랑하지 말라’로 해석합니다. 바울도 아볼로도 하나님의 일꾼일뿐이며 사라질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대안으로 ‘모든 것이 다 너희 것’(21절)이라고 말합니다. 22절에서 ‘모든 것’을 열거합니다.

  •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바울, 아볼로, 게바, 세계, 새명, 사망, 지금 것, 장래 것.. 이 모든 것이 다 ‘너희의 것’(2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준 것들입니다. 바울과 아불로, 게바는 사도들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종, 또는 전달자로 사용하여 너희(고린도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것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모든 시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이미 얻은 것입니다. 이 구절을 로마서 8:31-39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 결론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그런데 왜 세상의 지혜와 어리석은 사람을 의지하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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